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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츠라]크리스마스 선물

W.도키

 

 


"카츠라 선배."


소년의 목소리가 한적한 복도에 울려펴졌다. 


"카아츠라 선배."


등 뒤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지독히도 꽂혀왔지만 애써 무시한 채 카츠라가 교실 밖을 나섰다.


"카츠라 씨."


오늘은 기필코 녀석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라며 다짐, 또 다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답 좀 하시죠?"
"......"
"이렇게까지 부르긴 싫었는데."


끈질기게 카츠라를 불러대는 목소리에는 얄궂은 장난기가 서려있었다. 잠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끔 입을 열었다.


"카츠라! 즈ㄹ.."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아뿔싸.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주춤거리기도 잠시 금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적색의 눈동자는 카츠라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거 웬만하면 한 번 불렀을 때 대답 좀 합시다."


담갈색 머리칼의 앳된 외모를 가진 소년의 이름은 오키타 소고. 이미 교내에선 악질적인 도s라는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지."
"후배가 선배를 찾아오는데 꼭 일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죠."
"볼 일 없는 거면 먼저 가보도록 하겠네."


신종 괴롭힘 수단인가, 싶을 정도로 오키타는 매일같이 카츠라를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카츠라가 학생회장이라는 점을 이용해선 공부를 가르쳐달라거나, 고민을 상담 해달라거나, 하는 명분을 끌고 오곤 했다. 사실상 하는 일이라고는 영양가 없는 추파 던지기 뿐이었지만 말이다.


"거 성격 한번 급하시네. 오늘은 진짜로 할 말이 있다고요."
"1분 이내로 빨리 말하게."
"곧 크리스마스인 건 알죠?"
"물론이지."
"크리스마스 때 뭐 할 거예요?"
"그런 걸 프라이버시라고 한다네."
"정말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으시네요."
"이건 융통성이랑은 별개의 문제일세."


어련하시겠어요. 혀를 끌끌 내치곤 퉁명스레 대꾸했다. 고지식한 학생회장, 오키타가 생각하는 카츠라의 이미지또한 다른 이들과 별 다를 것은 없었다. 단지 모범생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장발의 머리라던가 웬만한 여자보다 허여멀건한 얼굴이 꽤나 제 마음에 들어  매일같이 카츠라를 찾아와선 추파를 던져대는 것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잠깐만요."
"왜 또 그러는가!"
"사실 오늘은 진짜로 상담할게 있어요."
"휴..1분 이내로 말하게."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자는 약속을 따냈어야 했지만,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향한 카츠라의 경계는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팽팽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사실 오늘 아침에 대 지각을 했거든요."
"... 무슨 이유로?"
"오랜만에 꿈을 꿨는데, 꿈에 카츠라 선배가 나왔어요."
"내가?"
"네. 카츠라 선배가 나왔는데... 그래서 그만 흥ㅂ..."
"그쯤에서 그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오랜만에 손빨래하느라 애 좀 먹었다고요."


카츠라에 경계심을 돋울 생각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악취미를 하루 만에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게서 달아나듯 멀어진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같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장발의 머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벌게진 얼굴이 생각나 괜스레 웃음이 났다. 정말 재밌는 사람이라니까. 

 

 

                                                                                                                         * * *

"점심같이 먹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끝나기도 무섭게, 언제 내려온 것인지 야끼소바 빵 봉지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좋을대로."

꽤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를 따라 나온 그 정성도 징하게 느껴졌으나, 애초에 눈 막고 귀 막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기에 상대해 봤자 저만 피곤해질것 같았다.   

"웬일이래요? 평소 같으면 '자네랑 같이 먹으면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모를걸세'라고 했을 텐데."
".. 그거 내 흉내인가?"
"나름 비슷하지 않아요?"
"전혀."

쳇. 입술을 대빨 내밀고는 벤치 오른쪽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그로부터 약 10분간은 일절 대화 없이 음식을 씹고 삼키는 행위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잔뜩 추파를 던지며 깐족거렸을 오키타가 웬일인지 오늘은 조용한 일이었다. 어차피 그와의 대화라 해봤자 늘 끌려다니는 느낌이었기에 카츠라는 이런 정적이 썩 달갑게 느껴졌다. 


"선물이에요."

카츠라가 마지막 주먹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정적은 끝이 났다. 오키타가 내민 것은 커다란 검은 봉지였다. 

"선물?.. 혹시 이 안에 든 게 벌레의 시체라던가,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수거해온 휴지 더미라던가.."

"말이 심하시네. 직접 내 돈 주고 산 정상적인 물건입니다. "

"갑자기 왜?"

"내일이 크리스마스잖아요. 선물이에요 크리스마스."


사실상 봉지 안 내용물보다 더 수상쩍은 것은 오키타였다. 어쩐지 말 수가 적을 때부터 이상하다 느끼긴 했다만.. 빨리 포장을 풀어보라며 재촉하는 목소리에 등줄기에서 식은땀마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아무리 크리스마스라 한들, 다른 사람도 아닌 오키타에게 선물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무엇이 들어있던 폭탄은 아닐 거라며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곤 꼼꼼히 묶어낸 리본을 풀어냈다.

".. 목도리?"

봉지 안에는 벌레의 시체도, 쓰레기 더미도 아닌 다홍 색의 목도리가 들어있었다. 설마 목도리 아래에 쓰레기 더미라도 숨겨뒀나 싶어 뒤져보아도 봉지 안에 든 것이라곤 목도리뿐이었다. 

"어디서 주워온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뺏은 것도 아니고 직접 산 거니 의심 그만하시죠."
"어.. 어... ..일단은 잘 쓰겠네."
"예예. 당근 그래야죠."

꺼낸 목도리를 다시 끔 봉지 안에 집어놓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카츠라를 제지한 것은 오키타의 손이었다.

"내 선물은요?"
"응?"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죠. 설마 준비 안 했어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한 손바닥은 카츠라 쪽을 향해 있었다.


"애초에 선물을 준비하란 말은 없지 않았는가..!"
"그런 걸 꼭 말해야 하나? 당연히 챙겨와야죠."
".. 그럼, 자네가 준 것을 다시 돌려...."
"어쩔 수 없죠. 선물을 준비 못했으면 외상이라도 해야죠."

카츠라의 말문을 막아선 것은 갑작스러운 오키타의 돌발행동이었다. 쪽-. 입술은 가벼운 마찰음을 내며 금세 떨어져 나갔다.


"뭐 이걸로 일단 크리스마스 선물 반의반은 받은 걸로 하죠."
"........"
"아 그냥 지금 다 받는 걸로 할까요?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사귀는걸로?"
"........허?"
"예예. 저도 선물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고요."

반박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말들을 내뱉어내고는 생긋 웃어 보였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카츠라 선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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