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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츠라]내리는 눈에 지난 아픔도 모두 덮어지기를

W.유메

 

밖에서 안이 모두 보이는 통유리 속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일 년의 마지막 날. 모두들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날을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마지막 학기부터 취업한 동기들도 있었고 4학년은 여러모로 다들 바쁘게 보내다 보니 서로 얼굴 볼 틈조차 없었다. 긴토키에게 전화한 동기는 그런 핑계를 대며 이럴 때 아님 언제 다들 얼굴 보겠냐며 긴토키를 닦달했고 긴토키는 결국 그 닦달에 져 이곳에 나왔다. 긴토키는 저 사람이 북적한 호프집에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내가 왜 이런 날 대학동기들과 함께 술이나 마시며 보내야 하는 건데.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들어가기 싫어진 긴토키는 애꿎은 신발 앞코를 바닥에 툭툭 치며 긁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그 행동을 멈췄다. 아 그냥 돌아갈까. 그래 돌아가자.

 

“어? 긴토키.”

 

돌아가려는 순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긴토키는 망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표정을 가다듬고 자신을 부른 상대를 바라봤다. 호프집에서 나온 히지카타가 긴토키를 부르고 있었다. 긴토키를 부른 히지카타는 담배를 피러 나온 듯 손에는 담배 한 까치가 들려있었다. 긴토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뭐야? 왔으면 들어와야지.”

“아.. 그게.......”

“혼자 들어오기 민망해서 그러냐? 뭘 그런 거 가지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이거 하나만 피고 같이 들어가자.”

 

히지카타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는 손에 들려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 끝에 붉은 불이 붙고 새하얀 연기가 나왔다. 긴토키는 그 모습에 돌아가는 걸 포기했다. 담배 연기가 퍼지며 독한 냄새가 나자 긴토키는 손으로 연기를 쫒으며 뒤에 있는 화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힐끔 보던 히지카타는 담배연기를 훅 뱉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옮겼다.

 

“그러고 보니 너 담배 안피지?”

“어.”

“담배 필 것처럼 생겼는데. 신기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 배웠었는데.”

“고딩 때?”

“금방 끊었어.”

“왜?”

“싫어해서.”

“누가? 여자친구가?”

“아니. 친구가.”

“대단하네. 친구가 싫어한다고 담배도 끊고. 애인도 아니고.”

 

히지카타는 반 이상 핀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남은 불씨를 꺼뜨렸다. 불씨를 밟고 있던 발이 사라지자 담배의 형체는 알아보기 힘들만큼 변해있었다.

 

“난 주위에서 끊으라고 잔소리 하는데도 잘 안 되더라.”

“......”

“들어가자.”

 

긴토키는 앞장 서 가는 히지카타를 따라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쌀쌀했던 밖의 날씨와는 다르게 실내는 따뜻하다 못해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앞서가던 히지카타에 긴토키가 보이지 않았던 건지 테이블에 앉아있던 동기들은 긴토키를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히지카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로 가 앉았다. 긴토키는 어쩔 줄 모르고 그런 히지카타만 시선으로 쫒았다. 히지카타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카츠라는 히지카타가 앉자 인상을 찌푸리며 히지카타의 팔뚝을 찰싹 찰싹 때리며 잔소리 했다.

 

“담배 냄새!”

“아 미안 미안. 냄새 많이 나?”

 

꽤 매서운 손길로 때리는데도 불구하고 히지카타는 아프지도 않은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코트에 냄새를 맡고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카츠라는 손으로 코를 막으며 한층 더 미간을 찌푸리며 히지카타를 바라봤다.

 

“당연하지. 담배 좀 끊......”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런 둘을 보고 있던 긴토키와 카츠라가 눈이 마주쳤다. 카츠라는 잠시 놀라는 것 같더니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긴토키가 그쪽으로 다가가려는 순간 누군가 서있는 긴토키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어? 뭐야 긴토키! 언제 왔어?”

“바..방금.”

“서서 뭐해 여기 앉아.”

 

긴토키의 손목을 잡은 나츠미는 자신의 옆자리를 비우며 긴토키의 팔을 잡아당겼다. 긴토키는 얼떨결에 생긴 자리에 앉았다. 앉기가 무섭게 자신의 앞에 맥주잔과 수저가 자리를 잡았다. 다들 이런대만 빨라서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온지도 몰랐던 동기들이 순식간에 비어있던 긴토키의 잔을 채웠다.

 

“자자. 긴토키도 왔으니까 다같이 건배하자.”

 

입학했던 그 순간부터 나서기 좋아하던 동기 하나가 자신의 잔을 들어 올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던 이목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다들 잔을 들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건배를 제의했던 동기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큼...흠... 자 다들 이제 졸업하면 또 언제 이렇게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돼서 생각하고 지금을 열심히 즐기자. 올해도 수고 많았다.”

“짠!!”

 

잔끼리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경쾌하게 가게 안에 울렸다. 긴토키는 잔에 든 맥주를 꼴깍꼴깍 마시다 문득 시선이 가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카츠라와 히지카타가 맥주잔을 놓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더 마셔도 되?”

“괜찮아. 아직 거뜬해.”

“천천히 마셔.”

“나 아직 괜찮다니까?”

 

대학생 내내 별로 친하지 않았던 둘이었다. 아니 오히려 안 친하다 못해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까지 흘렀었다. 근데 이제 졸업하려니 언제 저렇게 가까워 진거지. 긴토키는 시원한 맥주가 목에 넘어가는 이 순간에도 목이 타들어가는 기분에 맥주잔을 더 기울이며 벌컥벌컥 마셨다.

 

 

* *

 

 

밤늦은 시간이 다되어 가자 술자리도 무르익었다. 벌써 자신의 주량을 넘긴 것 같은 이들도 두루 있었다. 긴토키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테이블에 시선을 때지 못했다. 시선은 그곳에 놓고 주위에서 따라주는 맥주만 연거푸 들이켰다. 하하호호.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주위에 사람들은 병풍 취급하며 둘이서만 즐거워보였다. 어떻게 보면 카츠라 쪽만 분위기가 좋아 보이기도 했다. 히지카타는 그런 카츠라의 친한 척이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친구끼리 할 수 있는 평범한 스킨쉽에 몸이 움찔움찔 하는 것을 보면.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설명할 수 없는 짜증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속이 타는 느낌에 맥주잔을 잡으려는 긴토키의 팔을 누군가 잡아 맥주잔을 놓쳤다. 긴토키는 자신의 팔을 잡은 나츠미를 바라봤다.

 

“아... 미안 조금... 어지러워서......”

 

얘가 이렇게 술이 약했었나. 긴토키는 어지럽다며 자신의 팔을 잡고 의지하고 있는 나츠미를 잠시 물끄러미 보다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바람이라도 쐴래?”

 

긴토키의 말에 나츠미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긴토키는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을 보며 고민했다. 그래도 잡고 있는 걸 뿌리칠 수도 없고. 긴토키는 다른 손에 자신과 나츠미의 겉옷을 챙겨들고 그녀를 부축해 일어났다. 둘이 같이 일어나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녀석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둘을 바라봤다. 긴토키는 저 호기심어린 눈빛이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해 주었다.

 

“잠시 바람 쐬러.”

“왜 둘이나가?”

“어지럽다고 해서.”

“아. 다녀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둘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의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후. 또 멋대로 오해하겠군. 긴토키는 이런 일을 일일이 변명하기도 귀찮아 그녀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도 안과 같이 소란스러운 건 여전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밤의 번화가 거리는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답답한 가게를 나오니 싱숭생숭 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잊어지는 것 같았다. 가게 앞에 서있기도 그렇고...... 긴토키는 여전히 비틀거리는 나츠미과 함께 사람들을 비집고 맞은편 화단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녀는 화단에 앉았다. 겨울의 늦은 밤. 겉옷을 입지 않고 있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긴토키는 가지고 있던 그녀의 코트를 어깨에 덮어주고는 자신도 겉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앉아있는 나츠미를 내려다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긴토키를 올려다보았다.

 

“앉아. 서있지 말고. 다리 아프겠다.”

 

굳이 서있을 이유도 없고. 뒷머리를 긁적이던 긴토키는 두 뼘 정도 거리를 두고 화단에 앉았다. 그녀는 떨어져 있는 거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미소 지었다. 긴토키는 그런 행동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눈 온다고 하던데.”

 

눈? 긴토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 하나 없이 까맣기만 한 하늘은 정말 눈이 올 것 같기도 해보였다. 눈을 찌르는 밝은 조명에 긴토키는 오래 하늘을 보지 못하고 금방 시선을 내렸다.

 

“이런 날은 애인이랑 보내야 하는 건데.”

“저기 있는 놈들 다 애인 없는 것들 이지, 뭐.”

“너도?”

 

나츠미는 그렇게 물으며 긴토키를 바라봤다. 긴토키는 마주친 눈을 피해 신발 바닥이 닳도록 문지르고 있던 바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애인 있으면 내가 여기 왜있냐.”

“하긴 여자친구랑 놀아야지.”

“......”

“그렇지?”

 

묘하게 톤이 바뀐 것 같은 목소리에 긴토키는 바닥을 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나츠미는 태연한 표정으로 정면만 보고 있었다.

 

“쟤네 학교 다닐 땐 별로 안 친했던 거 같은데.”

 

대뜸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 긴토키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가 보고 있는 정면을 바라봤다. 아. 안 봤으면 더 좋았을 걸. 그녀를 따라 본 곳에는 이제 막 호프집에서 나온 카츠라와 히지카타가 서 있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로 간간히 둘이 보였다. 둘은 잠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카츠라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가 큰소리로 히지카타를 불렀다.

 

“야! 히지카타!”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히지카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사람들에 가려 앉아있는 둘이 보일리 만무했다. 그녀는 다시 큰소리로 그를 부르며 손을 머리 위로 흔들었다. 그러자 둘을 발견한 히지카타가 사람들을 피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빙글빙글 웃으며 히지카타에게 물었다.

 

“왜 나왔어?”

“잠시 편의점 좀.”

“너희 되게 보기 좋다.”

“뭐가?”

“카츠라랑 너 말이야.”

“......”

“너희 학교 다닐 때는 별로 안 친했잖아. 좀 사이 나빠 보이기까지 했는데.”

“......”

“아니야? 너 카츠라랑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긴장했잖아.”

 

나츠미의 말에 추위에 붉게 올라와있던 볼이 더욱 붉게 변했다. 저 자식 뭐하는 거야.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의 얼굴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 저거 카츠라가 너 찾는다.”

 

그녀는 히지카타의 반응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 웃음을 꾹꾹 참으며 히지카타를 보다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히지타카는 뒤를 돌아 가게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찾는 카츠라를 보고는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히지카타가 돌아간 뒤에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킥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긴토키는 그녀를 흘겨보고는 맡은 편에 있던 둘을 째려봤다. 아까보다 거리에 더욱 사람이 많아져 사람들 사이로 둘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카츠라의 손에 들려있던 빨간 목도리는 잠깐 사이 카츠라의 목에 둘러져 있었다.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 것 같더니 카츠라가 이쪽을 바라봤다. 긴토키는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흠짓 놀랐다. 카츠라는 긴토키와 눈이 마주치자 무표정으로 변하더니 다시 히지카타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둘은 거리에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너 카츠라랑 어릴 때부터 친구라고 했잖아. 둘이 싸웠어? 아는 척도 안하고.”

“......”

“우리도 들어가자. 5분 있으면 자정이다. 그래도 새해 카운트는 해야지?”

 

둘이 사라진 거리를 멍하니 보고 있던 긴토키는 나츠미의 말에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

 

 

긴토키는 젓가락 끝으로 애꿎은 안주만 꾹꾹 찔렀다. 그 손길에는 묘한 초조함이 담겨있었다. 따라놓고 손도 대지 않은 잔에 담긴 맥주는 이미 김이 모두 빠져버린 지 오래였다. 긴토키의 눈은 한시간 넘게 계속 비어있던 두 자리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편의점을 무슨 옆 동네까지 갔다 오나. 왜 이렇게 늦어.’

 

긴토키의 기다림이 한계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가게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돌아왔다. 밖에 눈이라도 오는 건지 두 사람의 어깨와 머리 위에는 새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너희는 작년에 나갔다 올해 돌아오는 구나.”

“뭐야. 밖에 눈 와?”

“응. 조금씩. 좀 있으면 많이 내릴 것 같은데.”

 

카츠라의 대답에 어린아이처럼 들뜬 몇 명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카츠라는 신나서 나가는 이들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카츠라의 어깨와 머리에 쌓인 눈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머리 위에 눈을 털어내는 손길에 카츠라는 히지카타를 바라봤다. 자신에게 쌓인 눈은 신경쓰지도 않고 자신의 눈을 털어내는 모습에 카츠라는 손을 뻗어 히지카타의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긴토키는 그 모습이 눈꼴시려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눈을 보러 자리를 떠난 이들 때문에 테이블이 한산해졌다. 시끌벅적 하던 곳에는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침묵이 지겨운지 카츠라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꼼지락 거렸다. 밖이 많이 추웠는지 새하얀 피부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긴토키는 그 미세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쫒았다.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는 분홍색 손끝에 낯선 물체가 등장했다. 캔커피. 손에 닿는 따뜻한 물체를 카츠라가 바라봤다. 히지카타는 캔커피를 보고만 있는 카츠라의 손에 캔커피를 쥐어주었다. 따뜻한 커피의 온기가 얼어있던 손을 녹였다.

 

“언제 샀어?”

“아까 편의점에서.”

“고마워.”

 

카츠라는 이제 테이블을 두드리던 걸 멈추고 손에 든 캔커피를 만지작거렸다. 툭툭. 카츠라의 손에 든 캔커피가 구멍 날 정도로 보고 있던 긴토키의 어깨를 나츠미가 두드렸다.

 

“쟤네 진짜 엄청 친해졌다. 신기해.”

“......”

 

긴토키는 그녀의 말에 대꾸 없이 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슬금슬금 밖에 나갔던 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리 옮기기로 했는데 어때? 집에 갈 사람들은 가고 2차 갈 사람들은 가고.”

“좋아. 난 2차 갈래 차도 끊겼고. 긴토키 갈 거지?”

“어? 어.......”

 

긴토키는 그녀의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다들 우르르 밖으로 나와 집으로 가는 이들은 다들 무리를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긴토키는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다. 천천히 내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시간도 천천히 늘러가고 있는 듯 했다.

 

“카츠라. 집에 갈 거야?”

“아니. 사카모토도 오늘 모임 있다고 늦게 온다고 해서.”

 

가만히 내리는 눈을 보고 있던 긴토키는 들려오는 익숙한 이름에 뒤를 돌았다. 돌아본 곳에는 이미 2차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한 무리들 사이에 히지카타와 카츠라도 함께 가고 있었다. 그 무리를 따라가지 않고 보고만 있던 긴토키의 어깨를 뒤늦게 나온 동기 하나가 잡았다.

 

“뭐해 긴토키? 가자.”

“어. 응.”

“잠깐! 다들 너무 한 거 아니야? 나 화장실 간 사이에 다들 가버리고.”

 

다급하게 나온 나츠미가 반대쪽 긴토키의 팔을 붙잡았다. 긴토키는 얼떨결에 양쪽을 포박 당했다. 팔짱을 낀 그녀의 팔을 빼내고 싶었지만 반대쪽이 다른 동기에게 붙잡혀 불가능했다.

 

“가자가자.”

 

술이 좀 됐는지 높은 텐션으로 가자고 외치는 동기에 긴토키는 결국 둘에게 이끌려갔다.

 

2차 장소로 가자 먼저 도착한 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의 선술집이었다. 나츠미는 긴토키를 이끌고는 비어있는 히지카타와 카츠라의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한 테이블에 그렇게 넷이서 앉게 되자 그들은 둘은 멀뚱히 보고 있었다. 긴토키는 그녀가 잡고 있던 팔을 빼며 자신의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헤집었다. 안 그래도 부스스한 곱슬머리가 더욱 흐트러졌다.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술을 건내자 행동을 멈추고 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 *

 

 

인원이 줄자 확실히 분위기는 조용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했다. 편안하자 다들 술도 잘 들어가는 지 술기운이 많이 올랐다. 나츠미가 상기된 얼굴로 카츠라에게 말했다.

 

“카츠라. 너랑 긴토키랑 어릴 때부터 친구지? 긴토키 쟤 원래 저랬어?”

“뭐가-?”

 

똑같이 술기운에 상기된 카츠라가 말끝을 늘리며 되물었다.

 

“왜에 긴토키 좀 츤데레 같잖아. 되게 안 해줄 것 같으면서 다해줘.”

 

그러자 그녀를 보고 있던 카츠라가 턱을 괴고는 시선을 옆으로 옮겨 긴토키를 바라봤다. 술에 취해 또렷하던 눈빛은 어디가고 반쯤 풀려 감긴 눈이 긴토키를 바라봤다. 흐리지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황녹색 빛 눈동자에 긴토키는 카츠라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지? 되게 안 해 줄 것 같으면서 다 해주지-. 남한테도 다 그렇게 해.”

“정말? 그러면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되게 별로겠다.”

“그렇..겠지? 그러면서 은근 남한테만 잘하고 자기 사람한테는 못하는 거 같기도 하고......”

 

긴토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긴토키의 얼굴을 지그시 보며 조곤조곤 말을 하던 카츠라는 당황한 그 얼굴에 하하 웃으며 쓰러지듯 턱을 괴고 있던 팔을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술 좀.... 깨고 올게.......”

 

카츠라가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자 히지카타가 다급하게 따라 일어났다.

 

“술 좀 된거 같은데. 같이 나갔다 올게.”

 

그리고는 카츠라가 두고 간 빨간색 목도리를 챙겨 나갔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앞자리에 그녀가 뻥진 표정으로 있다가 개운한 표정으로 하하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긴토키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긴토키는 속이 타 앞에 놓인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씁쓸한 알콜이 뜨겁게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어디가?”

 

긴토키가 자리에서 일어나가 그녀가 긴토키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긴토키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때어내며 말했다.

 

“화장실.”

 

화장실은 외부로 이어져있었다. 볼일을 보고 나온 긴토키는 어둠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 카츠라....... 그거 줘.”

“담배 피려고 따라 나왔어?”

“그건 아닌데. 술 마시면 담배에 더 손이 가.”

“좋지도 않은 거 왜 피는지 모르겠네.”

 

카츠라의 한 손에는 히지카타에게 서 빼앗은 담배 하나가 들려있었다. 금방 빼앗을 수 있을 텐데, 담배를 다시 빼앗으려는 히지카타의 몸짓은 그렇게 간절해 보이지도 않았다. 카츠라는 담배를 뒤로 숨기고는 한손으로 겉옷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것을 히지카타의 입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아 빨리.......”

“어때?”

“뭐야?”

“사탕.”

“......”

“담배 보다 훨씬 괜찮지?”

“......”

“내가 봤는데. 이 사탕이 시원한 맛이 나서 담배 끊는데 효과가 좀 있는 거 같더라고.”

 

히지카타는 더 이상 담배를 돌려받으려 하지 않고 입안에 든 사탕을 우물거렸다. 입 안 가득 시원한 솔향과 미세한 단맛이 퍼져나갔다. 긴토키는 저 둘에게서 보이는 익숙한 잔상에 머리가 아파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 *

 

 

“조심해서 가.”

“다들 조심해서 가.”

 

늦은 새벽 이라기보다는 이른 새벽 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은 시간이 되어서야 자리가 끝이 났다. 길거리에 그 많던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긴토키는 먼저 자리를 뜨려는 히지카타와 카츠라를 잡기 위해 발을 땠다. 그 순간 누군가 긴토키의 팔을 붙잡았다. 긴토키는 신경질 적으로 상대를 돌아봤다. 자신을 잡고 있던 나츠미를 본 긴토키는 당황해했다.

 

“어...... 미안.”

“괜찮아.”

“근데....왜?”

“나 좀 데려다 줄 수 있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들 자리를 떠버린 후였다. 히지카타와 카츠라가 간 곳을 보았지만 그들도 이미 멀어져 사라져버린 후였다. 긴토키는 작게 숨을 내뱉으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데려다 달라며.”

“..... 진짜?”

 

찔러 봤다는 듯이 반응하는 그녀 긴토키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녀는 아니라며 긴토키를 쫒아갔다.

 

택시 승강장에 선 둘은 택시를 기다렸다. 긴토키는 그녀가 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 듯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택시가 그들의 앞에 오고 그녀는 택시를 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긴토키.”

“......”

“긴토키!!”

“어??”

“나 갈게.”

“어 그래. 잘 가.”

“너도 가봐야 되지 않아?”

“나도 집에 가봐야지.”

“아니 집에 말고 다른데.”

“......”

 

그녀는 묘한 말을 흘리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멍하니 있는 긴토키를 향해 말했다.

 

“얼른 가 봐. 아직 안 늦었을 걸?”

“.......”

“이제 졸업하면 볼일 없겠네.”

“......”

“오늘 고마웠어.”

“......”

“그리고 미안.”

“......”

“4년 동안 이루지 못한 거 소원풀이 겸 심통 좀 부려봤어.”

“......”

“카츠라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줘.”

 

그렇게 그녀를 태운 택시는 떠났다. 긴토키는 넋을 놓고 멀어지는 택시만 바라봤다. 그리고 카츠라와 히지카타가 사라진 쪽으로 뛰었다. 내리는 눈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얼굴을 때렸다. 얼어 버린 길바닥에 휘청하기도 했다. 눈바람을 맞으며 얼굴과 손이 차갑게 얼어갔다. 긴토키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가고 있는 익숙한 인영에 걸음을 멈췄다. 혼자 천천히 걷고 있는 인영을 향해 긴토키는 남은 숨을 몰아쉬며 달렸다. 소복히 쌓인 눈이 긴토키의 뜀박질 소리를 흡수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에 카츠라는 가로등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손목을 잡는 차가운 손길에 뒤를 돌자 미끄러져 넘어지려는 긴토키를 얼떨결에 잡았다.

 

“하....하......”

“뭐...뭐야 긴토키.”

“하....너... 어디...하...가....”

“......”

“어디...하아....가냐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긴토키를 보고 있던 카츠라가 당황했던 목소리를 지우고는 대답했다.

 

“너야 말로 어디 가는 거야? 여기는 집이랑 반대 방향이잖아.”

 

허리를 숙여 숨을 몰아쉬며 헥헥 거리던 긴토키는 숨이 돌아오자 상체를 들어 카츠라를 마주했다. 술이 깬 건지 술집에서 마주했던 흐린 눈동자는 없었다. 풀린 눈도 없었다. 원래처럼 또렷한 눈매로 돌아와 있었다.

 

“히지카타는?”

“...... 집에 갔지.”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만 하는 긴토키에 카츠라는 미심적은 눈빛을 보내며 대답했다. 카츠라의 대답에 긴토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너는 어디가?”

“......”

“여기 집이랑 반대 방향이잖아.”

“그 질문 내가 먼저......”

“집에 같이 갈래? 너무 오랜만에 가려니 어색해서.”

“긴토키 너 집에 안 갔어?”

“응.”

“왜?”

“내가 집에 있으면...... 네가 집에 안 들어갈 거잖아.”

“한 번도? 단 한 번도 안 들어갔어?”

“너 없을 때 가끔 들어갔다 나오긴 했는데. 근데 너 그 말은.......”

“......”

“너도 집에 안 들어갔어?”

“......”

“왜? 그럼 지금까지 한 달 동안 어디 있었는데?”

 

긴토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카츠라는 격양 돼 커지는 긴토키의 목소리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쉿! 사람을 깨겠어.”

“......파하! 그럼 너 어디 있었는데?”

“사카모토 집에.”

“사카모토 집에?!”

“조용히 좀 하라니까!”

“멀쩡한 집을 내버려 두고 거기를 왜가?”

“너야 말로 멀쩡한 집에 왜 안 들어갔는데?”

 

서로 흥분해 씩씩거리다 카츠라가 먼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더 싸워서 뭐해. 집에 가.”

 

카츠라는 등을 돌려가던 길을 갔다. 긴토키는 망설이듯 우물쭈물 하고 있다 입을 열었다.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에 카츠라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같이 가자, 즈라.”

“......”

“우리 집....... 가끔 현관에 혼자 불도 켜지고 나 무섭단 말이야.”

“......”

“무서워서 집에 혼자 못 들어가.”

“......”

“같이 집에 가자.”

 

카츠라가 뒤로 홱 돌았다. 긴토키의 기대와는 다르게 카츠라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즈라가 아니라 카츠리야.”

“......”

“이제 즈라라고 부르지마 긴토키.”

“......”

“나 집에 안 갈거야. 긴토키.”

“......”

“우리 끝났잖아? 내가 그때 먼저 집나온 날. 너도 나 안 잡았던 날.”

“......”

“지난 3년 동안 나 너무 힘들었어. 너랑 사귀는 동안 힘들었다고.”

“......”

“남들에게 티내지 못하는 것도 힘들었고 숨겨야 한다는 것도 힘들었어.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건 사귀기 전과 후의 바뀌지 않은 너의 태도가 가장 힘들었어.”

“......”

“긴토키. 나랑 왜 사귀었어? 내 고백 왜 받아줬어?”

“......”

“그냥 같이 살기까지 하니까 편하게 잘 상대가 필요했던 건 아니고?”

 

카츠라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꽉 쥐고 있는 주먹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긴토키는 너무 꽉 쥐고 있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카츠라의 주먹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 진심이야?”

“......”

“정말 나랑 사귀면서 지금 것 괴롭기만 했어 즈라?”

“즈라가 아니라...!”

“그럼 그 목도리는 왜 하고 다녀?”

 

긴토키의 말에 카츠라는 하고 있던 빨간 목도리를 꽉 쥐었다. 카츠라가 하고 있는 목도리는 사실 긴토키의 것이다. 우연히. 그러니까 어쩌다보니 카츠라가 집에서 나오던 날 긴토키가 카츠라에게 해주어 카츠라가 하고 있었고 그대로 하고 나왔던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선물로 준건데 왜 네 것만이 되는 건데?”

“네가 선물로 나 줬으면 내거지.”

“.......”

“.......”

 

카츠라는 목도리를 거친 손길로 풀어냈다. 그리고는 새하얀 눈이 쌓인 바닥에 내팽개쳤다. 새하얀 눈 위에 빨간 목도리가 떨어진 모습이 꼭 피가 번진 것처럼 보였다.

 

“그럼 가져가.”

 

긴토키는 눈바닥에 내팽개쳐진 목도리를 바라봤다. 카츠라는 씩씩거리며 긴토키를 바라봤다. 목도리가 사라지자 횅해진 목에 찬 눈바람이 닿았다. 아무 말 없이 목도리만 보고 있는 긴토키를 카츠라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즈라. 아니, 카츠라.”

“......”

“우리 진짜 끝났어?”

“왜 자꾸 물어.”

“그럼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

“너 히지카타랑 사겨?”

“하?”

“아니지?”

“지금 그런 걸 물어볼......”

“그럼 나랑 사귈래?”

 

긴토키의 말에 카츠라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저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하는 말을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리 끝났다고......”

“그러니까 내가 고백하는 거잖아.”

“......”

“우리 사귈래?”

“......”

 

긴토키는 소복소복 눈을 밟으며 천천히 카츠라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져 있던 목도리를 주웠다. 눈이 묻은 목도리를 탈탈 털자 빨간 목도리에 묻어있던 눈이 흩날렸다.

 

“네가 오늘 히지카타랑 너무 가까워서 불안했어.”

“......”

“너 과팅 나가서 인기 많았을 때도 너무 싫었어.”

“......”

“너 여자친구 생겼을 때도 그년이 너무 질투나서 빨리 헤어지기를 기도했어.”

“......”

“네가 내 아래에서 울면 너 우는 건 싫은데도 그때마다 너무 좋아서 널 더 괴롭혔어.”

“......”

“네가 목도리 줬을 때 너무 기뻤고 너랑 같은 대학 붙었을 때도 너무 좋았어.”

“......”

“같이 학생 때 공부하던 때도 좋았고 네가 공부하다 잠들면 그 얼굴 보는 것도 너무 설랬어.”

“......”

“같이 숨바꼭질 하면서 손잡고 숨어있으면 그게 심장이 너무 뛰었는데 그게 내가 널 좋아하는 건지 몰랐어.”

 

마주하고 있는 카츠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긴토키는 손에 쥐고 있던 목소리를 카츠라에 목에 둘러주었다.

 

“내가 이렇게 널 좋아하는데. 나랑 사귈래?”

 

카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긴토키가 팔을 활짝 펴자 카츠라가 품이 안겼다. 긴토키의 품에 안기자 카츠라는 참고 있던 서러움이 터져버렸다. 긴토키는 한 달 만에 품에 안는 카츠라를 꽉 껴안았다. 긴토키는 카츠라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추운 새해의 새벽이었지만 맞닿은 입술과 품에 안고 있는 온기로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즈라,...... 올해는 내가 잘할게. 받아줘서 고마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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