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2 Happy birth day
Yang Si Baek
우편함에 하얀 편지봉투가 들어있었다. 편지봉투를 들고 도장 안으로 들어왔다. 출출해서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생각에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켰다. 물이 끓을 동안 편지봉투를 뜯고 안에 들어있는, 편지봉투와 같이 하얀 편지지에 적힌 편지를 꺼내서 읽어보았다.
「양시백이.
요즘 바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그 사건을 겪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고 있고. 어제 짬이 나서 설희를 보러 시설에 잠시 다녀왔다. 너와 같이 가지 못한 점은 미안하다. 일단 설희는 잘 지내고 있더라. 다른 애들과도 잘 어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얘기 안 하는 게 좋겠지?」
물이 끓기 시작했다. 재빨리 장에서 라면을 꺼냈다. 냄비에 면을 넣고 기다리다 스프를 넣었다. 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설희는 잘 있구나. 재호 아저씨의 추측대로 요즘 많이 바빴다. 그래서 설희를 보러 갈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설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설희를 위해서라도 일단 입다물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계속 읽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기사를 썼다. 친구니까 실드 치는 기사를 내야 하나 망설였지만 기자는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최대한 공정한 시각으로 적었다. 동료 기자들이 몇 번이나 검토해줬는지 몰라… 그래도 기사를 보다 보면 준혁이에 대한 동료애가 아직도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고. 봉투 안에 잘라서 넣어놨으니, 너도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봉투를 살펴봤다. 얇은 회색 빛깔의 종이가 하나 더 들어있었다. 종이를 꺼냈지만 읽을 염두는 나지 않았다. 아직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걸 읽으면 무엇보다 준혁 선생님의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유상일이 박근태와 함께 죽는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기사를 내려놓았다. 이건 나중에, 버틸 수 있게 되면 읽자.
냄비를 테이블에 올려둔 냄비 받침대 위에 놓았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적거리며 다시 편지를 읽었다.
「서론이 길어졌군.
내가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이유는 너도 잘 알 것이다. 오늘은 12가 두 번 반복되는 날이지 않나. 일 년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날이지. 너를 알게 된 일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나도 과거의 사람들이니까, 공감대가 하나라도 있으니까. 그리 좋은 공감대는 아니지만… 아무튼 생일 축하한다. 뜻깊은 날이니까 오늘만은 라면 말고 꼭 다른 음식 먹어라.」
마지막 줄을 읽은 순간, 면발 몇 가닥을 사이에 껴둔 채 입을 향하고 있던 젓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젓가락을 내려놓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저씨에게 예지력이라도 있는 건가? 어떻게 내가 라면을 먹을 걸 안 거지?
그러고 보니, 오늘은 12월 12일, 내 생일이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날짜를 한 번 더 보았다. 12월 12일. 12가 두 번 반복되는 날. 올해 생일은 그 없이 보내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을 두어 번 비비고 다시 편지에 집중했다.
「이왕이면 남은 인생도 평탄했으면 좋겠지만 너와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거 알잖나. 하태성이 일도 그렇고. 하지만 오늘만은 즐겨라.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나중에 꼭 찾아가겠다. 편지로 얼렁뚱땅 선물 대체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 말고. 선물로는 새 옷을 생각하고 있다. 그럼 이만 줄일 테니까 잘 지내라.
서재호.」
편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라면도 동시에 바닥이 났다. 편지를 한 번 더 읽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봉투 안에 넣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냄비를 집어 들었다.
아직 그 사건은 내 뇌리 속에 박혀있었다. 그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임무가 있었다. 홍설희를 지켜주고, 박수정을 보호하고, 하태성을 찾아야 했다. 나 혼자 하기에는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재호 아저씨도 있었고, 권혜연 순경님도 있었다.
그러니까 생일 축하한다, 나야.
오늘도 힘차게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