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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으, 추워. 다녀왔습니다!"

 

"왔냐, 양시! 이리 와라. 점심 먹자!"

 

"춥지? 얼른 들어와라."

 

 

여느 날과 같이 시작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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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이서 작은 태권도장을 차린 지 몇 년째, 그들은 태권도장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재석은 일찌감치 자격증을 따두었었고, 태수도 타고난 운동능력으로 곧 재석과 함께 공동관장이 될 수 있었다. 시백도 얼마 전 사범지도자 심사를 보고 왔으니, 금방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관장님들, 우리 애들 오기 전에 청소 좀 해야겠는데요."

 

과연 그럴 만했다. 아담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깨끗하던 태권도장은 어제저녁까지 연습하다 간 체대 입시생들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다. 늦은 밤까지 도장에 있던 애들을 집에 가야지, 하고 내쫓듯 보내고 피곤한 나머지 내일 아침에 와서 정리하자 했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반쯤은 의식적으로 까먹고 있었나 보다. 어제 제일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재석이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아이고, 오늘 오자마자 정리한다는 걸 라면 사와서 먹느라 깜박하고있었구만. 먹던 거 마저 먹어치우고 후딱 치워버리자."

 

태수가 냄비에 그릇을 포개는 것을 마지막으로, 셋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종 그릇과 냄비가 담긴 쟁반을 들고 가는 시백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태수는 새삼 감회에 젖은 눈을 했다. 몇 년 전 자신을 조롱하던 회장의 손아귀에서 자신과 사랑하는 아들을 구하러 갔던 그때, 다급한 와중에 생각났던 사람인 재석은 그를 도우러 와주었고, 자신들의 말을 믿지 못했던 아들을 때려눕히다시피 하여 데리고 나왔었다. 시백이 깨어날때까지 그는 자책했다. 아들이 이런 곳에 붙잡혀 있었던 것도,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도, 그리고 아들이 거기 붙잡혀있던 걸 몰랐던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아들이 깨어나서 날 받아준다면, 그 어떤 것도 함께 해주리라. 다짐했었고, 그 다짐을 지켜왔던 지난 몇 년의 세월이 눈앞을 지나갔다. 만약 그때 무엇인가 어긋나서 이 소중한 일상이 깨어졌다면. 끔찍한 일이다.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걱정했었던 회장의 추적도 없었다. 그저, 강 비서가 마지막 호의로 아량을 베푼 것일 테다, 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가 백석에 있었던 시절에도 강 비서의 힘은 조금씩 커지고 있었고, 그런 그녀가 회장의 눈과 귀를 막았을 것이다. 혹은 거짓을 고했거나. 어쨌든 그에겐 고마운 일이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시백과 소개소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만큼 어색하진 않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안 그래도 말이 없는 부자는 더 말이 없어지는 일이 아직도 많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백의 생일 때, 조금이라도 개선을 해보자, 생각했다.

 

문득, 어깨를 툭툭 치는 손짓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뭐해, 아저씨? 왜 혼자 멀거니 서 있어?"

 

"이번 시백이 생일 때, 생일파티를 어떻게 해줄까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도움을 줄 수 있겠나?"

 

"그거야 내 전문이지. 나만 따라오라고." 재석이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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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살펴보니, 올해 시백의 생일은 월요일이었다. 정신없던 나날을 보내고 날이 다가오자, 재석은 태수에게 미리 일러두었던 것을 준비하라고 했다. 시백은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그들의 입가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이랬다. 생일 전날 밤, 태수는 미리 태권도장에 와서 케이크와 선물 등을 세팅하고 있고, 재석은 밤에 시백을 데리고 태권도장에 오다가 시백에게 맛있는 것을 사오라 시키고 자신은 먼저 도착해 세팅 마무리를 하고, 시백이 도착하여 불을 켜면 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당일은,

케이크를 세팅하던 태수에게 온 재석은 당혹감과 마주해야 했다. 초에 불을 붙일 성냥이 없던 것이었다. 오다가 떨어트렸나, 하필이면 지금 태권도장의 간이부엌도 가스통에 가스가 없어 불이 안켜지는데, 안절부절못하던 그들은 결국 근처 편의점에서 라이터라도 사 오자 해서 재석이 나가려던 도중에-

 

탁-

"먼저 간다더니 아직도 도착 못 하셨나, 불도 안켜놓고.. 어라?"

 

막 태권도장으로 들어오며 불을 켜던 시백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던 것이다.

 

"..."

 

정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눈이 휘둥그레진 시백이 물었다.

 

"이게 다 뭐에요? 오늘 무슨 날인가?"

 

"무슨 날이긴! 네 생일이지! 가서 앉자!" 괜히 민망해진 재석은 헛기침을 하며 시백을 잡아끌었다. 

 

"네 생일이라 이번엔 생일파티를 준비해보려 했는데 아쉽게도 촛불이 없구나. 그래도 뜻깊은 생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일 축하한다, 아들아." 태수도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내밀었다. 설레는 눈빛으로 선물을 풀어본 시백이 탄성을 질렀다.

 

"시계네요! ..그리고 군번줄?"

 

"시계는 우리가 함께했던, 함께 할 시간이 소중하단 뜻으로 둘이 돈 모아서 샀고, 군번줄은 내가 차고 있던 건데 네가 차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네게 선물했다. 부디 잘 써줬으면 좋겠구나."

 

"고맙습니다, 아버지. 잘 쓸게요." 아버지라는 말이 조금 낯간지러웠던 부자는 웃음으로 화답하고, 시백은 시계와 군번줄을 차보았다. 원래 본인의 것이었던 양, 꼭 맞았다. 

 

"눈물겨운 부자상봉은 이제 끝내고, 노래불러야지! 촛불은 없지만 그래도 불어주라! 그리고 얼른 먹자!" 재석의 성화에 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시백이-

생일 축하합니다🎵

 

"맞다, 양시 너 맛있는 거 뭐 사왔냐?"

 

"라면이랑 음료수랑 과자 조금?"

 

"지금 가스 나갔다니까 그러네. 음료수랑 과자는 지금 다 먹어버리자!"

 

12시가 넘은 깊은 밤까지 태권도장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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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태권도장에 우편물이 하나 와있었다.

 

<양시백 귀하

 

귀하는 이번 사범지도자 심사에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이얏호! 하는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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